뉴라이트 란? 뜻 논란 역사관 김형석 프로필
요즘 뉴라이트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도대체 뉴라이트가 뭐길래 광복절 행사에 참석한다 만다 얘기가 나오는 것인지, 뉴라이트란 뭐고 왜 문제인지 뜻과 논란 뉴라이트 역사관 신임 독립기념관장 김형석 프로필까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뉴라이트 란? 뜻 논란 역사관 김형석 프로필
뉴라이트 뜻 논란 역사관 뉴라이트 란?
뉴라이트는 영어로 New Right인데요,
말 그대로 새로운 우익, 신 보수주의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1970년대~8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외국의 신보수주의와 우리나라의 신보수주의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에 한정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뉴라이트란 쉽게 말해
2000년대 중반 ‘새로운 보수’를 걸고 나온 보수 연구자 단체와 정치 움직임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전후로 역사 교과서 수정 작업을 주도하면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재평가와 식민사관 논란 등의 중심에 서 왔죠.
주로 교과서포럼과 한국현대사학회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네요.
요즘 독립기념관장 김형석 임명 논란이나, 광복회의 광복절 행사 불참 논란과 같은 기사를 보면 뉴라이트가 뭔지 모르겠지만 나쁜 것처럼 얘기되는 게 느껴지시죠? 김 관장 본인도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하고요.
왜 사람들이 뉴라이트니 아니니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라는 둥 이렇게 해명을 하고 있는지, 뉴라이트가 무엇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
한국의 뉴라이트는 기존 보수 세력의 혁신을 주장하며 새롭게 신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를 쭉 보면 계속 보수 진영이 집권하다가 90년대 들어서야 진보와 보수가 서로 정권을 쥐었다 뺐겨다 하는 양상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전가의 보도 처럼 사용하던 이념은 '반공'이었죠.
과거 대통령 선거를 돌이켜 보면 보수와 진보가 맞닥뜨릴 때 보수 쪽에서 항상 하는 얘기가 60~70년대엔 빨갱이, 반공, 그리고 80~90년대엔 주사파, 색깔론, 북풍 이런 얘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공산주의 자체가 쇠퇴하면서 반공을 외쳐도 철지난 애기인 것 같고, 더 이상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이념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수 쪽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더 이상 정권을 잡을 수 없겠다. 해서 반공을 대체할 핵심 가치로 들고 나온 것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인 것입니다.
뉴라이트는 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기존 보수 세력과 차별화 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나쁜 말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뉴라이트가 욕을 먹는 거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겠습니다. 뉴라이트의 핵심은 시장경제라고 했습니다.
시장경제의 확대와 발전만이 인류 역사 발전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이죠.
뉴라이트가 얘기하는 시장경제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요소로 설명됩니다.
1. 시장경제는 도덕적 원칙에 간섭을 받아선 안된다. 경제와 도덕은 다른 영역이다.
2.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면 된다.
3. 시장경제가 운영되는 유일한 원칙은 경쟁이다.
4. 시장경제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이 뉴라이트 시장경제의 개념을 역사관에 적용시키면 이제껏 우리가 배워왔고 믿어왔던 상식적인 역사관 과는 배치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뉴라이트 성향으로 여겨지는 교과서 포럼은 2008년에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편찬하면서 독재와 친일을 미화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해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가령 이런 것들이죠.
일제 강점기를 묘사할때
기존 역사책에는 <일제에 대항한 민중 세력 저항의 시대>라고 표현한다면,
뉴라이트 교과서에는 억압과 수탈의 시기였음과 동시에 <근대 국민국가 수립 능력이 축적된 근대화 시기>라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도
기존 역사학계에선 <독재 정권, 친미 사대정권>이라고 얘기한다면
뉴라이트 교과서에선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체제의 토대를 닦은 건국의 제1공로자>라고 표현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골수 뉴라이트 학자들의 입장에선 도덕적 가치보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제가 우리나라를 수탈한 것과는 별개로 그 시기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도움이 된 시기였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은 그게 만에 하나 사실이더라도 일반적인 국민 정서상 터부시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뉴라이트 학자들 중 일부는 이런 얘기들을 공공연하게 하면서 마치 나를 욕할 테면 욕해라 나는 팩트를 얘기하는 것이고, 이러한 역사관만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길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정말 팩트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민성 까지 운운하면서 일본이 없었다면 우리가 발전할 수 없었을 거란 논조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이런 것들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도 아니고요.
위안부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그게 진리인양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시장경제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하면 그러한 가치를 더 우선에 둔다는 건 일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수긍할 수 없는 얘기죠.
이번에 신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김형석 씨에게 이번 논란이 있고 나서 SBS기자가 일제 시대의 우리나라 국민의 국적은 어디인가라고 물었을 때 일본국적이라고 대답했죠.
그러고 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독립을 하려고 애썼던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SBS 기자는 “일본이라고 했던 그 부분에 대해 궁금하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정부가 부정한 것이지 않느냐. 그 당시도 ‘우리는 조선의 국민’이라고 답변했으면 문제가 안 됐을 텐데”라며 “김 관장 말이 약간 상충된 측면이 있다. 분명히 일제강점기를 우리 정부 입장처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도 반면에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이 존재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김 관장은 “역사를 보는 관점이 두 가지다. 우리 환경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특수한 해석이 있고, 세계 속에서 바라보는 보편적인 방법이 있다”며 얘기했는데, 바로 이 후자의 역사관이 김 관장의 역사관인 것이고 뉴라이트 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일본 국적으로 베를린 올림픽에 나간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의사에 반한 것이고 억지로 그렇게 된 것이기에 그 당시 동아일보에서도 일장기를 지웠던 것이고 일본 국민이라는 걸 부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김관장은 팩트는 팩트라면서 우리가 일본 국적이었던 것은 맞다고 하는 것이니 이게 보편적인 국민정서에 맞는 생각인지 의문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말 한마디, 생각의 시작 자체가 어떤 방향이냐 하는 것은 이제 김 관장이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기념관장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김형석 신임 관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프로필 및 논란
김형석 나이는 1955년 9월 30일생 68세입니다.
2024년 8월 6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됐죠.
김형석 관장은 1955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오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까지 땄고, 남강문화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이승훈 연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91년부터 총신대학교 교수로 일하다가 1995년 북한 대홍수 소식을 듣고 '인도지원 사업'에 투신,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창립으로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습니다.
1997년 '한민족복지재단' 설립 후 초대 사무총장 및 회장을 10년 동안 맡으며 대북지원 및 국제 구호 활동에 진력하며 2003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됐고, 2006년 한민족복지재단이 북한 복토직파 기술을 이용한 농업지원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혁신사례로 인정받아 제1회 국제 NGO혁신박람회의 아시아 대표로 선정되는 데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는 통일과나눔 창립 때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죠.
2016년부터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을 맡으며 역사학 연구를 다시 시작하여 2020년 대한민국사 연구소 소장, 2021년 고신대학교 석좌교수를 맡았고 2022년 '대한민국역사와 미래'를 설립한 후 초대 이사장으로 재직했습니다.
김 관장은 취임식을 마친 후 바로 기자들에게 "친일인명사전의 내용들이 사실상 오류들이 있더라. 잘못된 기술에 의해서 억울하게 친일 인사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독립기념관장이 취임 첫날부터 친일파 명예 회복을 언급한 셈이죠.
김 관장은 그동안 안익태, 백선엽 등 친일 행적이 드러난 역사 인물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작곡가 안익태를 두고 "친일을 뛰어넘어 음악을 통해 세계평화를 이루려고 했다"며 "항일과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고 했고, 백선엽 장군에 대해선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사실만으로 진실을 오해한 것 아니냐"며 "친일파라는 불명예를 쓰고 별세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친일파에 대해선 이미 한번 정리가 되어 친일 인명 사전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그 사전을 만들 때도 얼마나 많은 인력과 연구와 학계의 각종 주장을 수렴하고 고심해서 만든 건데 그걸 또 본인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서 뜯어고친다면 보통 일이 아니죠.
물론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만 자기가 관장이 되었다고 하여 자기가 연구한대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만 바꾼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김 관장의 취임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
그 중에서는 자기와 생각이 달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가 됐으면 하는 사람이 관장이 안되어서 김 관장을 끌어내리려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적 상식을 기준으로 그것과 맞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김 관장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성철 연세민주동문회 회장은 김 관장이
▲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고 부를 수 없다'라고 주장한 점
▲ '이날을 광복절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이라고 폄훼한 점
▲ '임시정부 계승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 볼 때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 점
▲ '대한민국이 시작된 것은 1948년 8월 15일'이라며 건국절 논란을 일으킨 점
▲ 친일파 두둔 발언 및 '항일과 친일을 이분법적인 잣대로 구분할 수 없다'라고 한 점 등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 관장은 본인이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뉴라이트 학자들과 비슷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독립기념관장의 임무는 더 많은 독립운동가를 찾아내고, 더 많은 독립운동 자료를 발굴하고, 더 많은 독립운동 사적지를 발굴하여 국민들에게 독립 정신을 제대로 알리는 것 일 텐데, 독립운동가를 찾는 것보다 기존에 친일파라고 인정되었던 사람을 복권시키는데 관심이 있다면 그건 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있는 인물 중에 공도 있고 과도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가 어떤 공을 세웠던 친일 행적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간 것이지 잘한 것만 있고 친일 행적은 1도 안했는데 친일 인명사전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그런데 이 사람은 친일을 조금 했으니 봐주고 이 사람은 많이 했으니 그냥 두고, 이 사람은 좋은 일도 많이 했으니 친일 좀 해도 봐주고... 이런 일들은 괜히 논란만 더 불러일으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되겠지만,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진짜 일부 사람들이 우려하는 대로 친일파 명예회복에만 앞장선다면 그땐 모든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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