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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나이 키 고향 프로필 사망 원인 그라드 딸 레닌 차이 셀럽병사

by 통통이0206 2025. 3. 11.

스탈린 나이 키 고향 프로필 사망 원인 그라드 딸 레닌 차이 셀럽병사

스탈린 나이 키 고향 프로필 사망 원인 그라드 딸 레닌 차이 셀럽병사

 

이번주 KBS 2TV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스탈린, 루즈벨트, 처칠, 그리고 히틀러의 죽음과 음모론 등에 대해 방송된다고 해 화제입니다.

오늘은 스탈린 나이 키 고향 프로필 사망 원인 그라드 딸 레닌 차이 셀럽병사의 비밀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스탈린 나이 키 고향 프로필 사망 원인 그라드 딸 레닌 차이 셀럽병사

스탈린 셀럽병사의 비밀

KBS 2TV 한국 최초의 의학 스토리텔링 예능 ‘셀럽병사의 비밀’에서 '찬또' 이찬원이 결국 '음모론 담당'을 인정해 웃음을 자아내는데요.

 

 

11일 방송되는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히틀러에 맞선 소련의 스탈린,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등 연합국 리더들의 공통된 사인(死因)이 밝혀집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앞서, 이찬원은 " 제가 '셀럽병사의 비밀'에서 공식 음모론 담당이다"라며 이번 스토리텔링을 자신.

 

 

먼저 러시아 모스크바의 숲 속, 아파트 대단지만한 넓이의 저택에서 약 3백 명의 무장 경호 인원과 함께 은거 중이던 스탈린이 바지에 소변을 지린 채 쓰러진 모습으로 발견.

 

 

하지만 당시 히틀러 치하의 소련에 포섭된 의사들이 체포되는 등 혼란한 상황이었는데요.

 

 

오랜 기간 스탈린을 돌본 주치의조차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고 유치장에 갇혀있었죠.

 

 

스탈린의 상태를 확인할 의사가 없자, 그를 발견한 경호원이 스탈린의 용태를 확인.

 

그제서야 경호원은 "깊이 잠들어계신다"고 스탈린의 측근들에게 보고했는데요. 4일 뒤, 스탈린은 결국 사망했죠.

 

그때 당시, 히틀러가 루즈벨트X스탈린X처칠 연합국 세 지도자를 한 번에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소문도 파다.

 

 

이에 이찬원은 "소련의 비밀 기록물을 연구하는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독살'이라는 의견도 있다"며 음모론을 소개하죠.

 

 

이날 방송에는 정치 외교학자이자 국제정세 전문가 김지윤 박사가 텔러로 등장해 출연자들의 의문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며 이해를 도왔는데요.

 

 

2천만명 이상을 학살해 '인간 백정'으로 불린 스탈린, 미국의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루즈벨트 그리고 영국의 처칠까지 세 사람이 참여한 얄타 회담의 저주는 3월 11일(화) 저녁 8시 30분에 공개됩니다.

 

 

 

 

스탈린 나이 키 고향 프로필 사망 원인 그라드 딸 레닌 차이 셀럽병사의 비밀

스탈린 출생은 1878년 12월 18일로, 살아있다면 스탈린 나이는 146세입니다.

 

 

스탈린 사망은 1953년 3월 5일로 향년 74세에 했죠.

 

 

고향은 러시아 제국 티플리스현 고리인데요. 소련붕괴로 현재는 조지아 시다카르틀리주 고리시이죠.

 

스탈린 가족은 두명의 배우자와 사별했고 자녀는 아들 둘에 딸 하나, 양자가 한명이 있죠.

 

 

첫번째 부인은 스탈린의 동지의 남매로 잦은 도피생활로 인해 결혼 2년만에 병사했는데요.

 

 

스탈린이 그녀를 무척 사랑해 본인도 따라죽겠다고 소동을 부릴정도였는데, 그녀의 자식인 큰아들은 그녀를 닮았다는 이유로 멀리했다죠.

 

첫부인이 죽고 인간에 대한 애정도 묻었다고 했다네요.

 

두번째 부인은 레닌의 비서였는데 스탈린은 냉소적, 그녀는 스탈린을 사랑했었다는데, 결국 권총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

학력은 트빌리시 신학교 중퇴.

 

스탈린 키는 165cm에 몸무게는 72kg.

 

 

종교는 조지아 정교회에서 무종교로 변경.

 

최종 당적은 소련 공산당입니다.

 

소련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독재자.

 

 

스탈린은 1922년부터 1952년까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을 지내면서 30년 동안 소비에트 연방 제2대 최고지도자를 지냈고요.

 

 

1946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장관회의 주석에 재임.

 

러시아 제국 치하 그루지야의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기에 정교회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청년기에 공산주의자가 되어 신학교를 자퇴하고 공산주의 혁명가가 되었죠.

 

블라디미르 레닌 휘하에서 러시아 혁명에 동참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소련 건국에 일조.

 

레닌 사후 권력을 장악해 소련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정적 제거 및 권력 장악을 위해 대숙청을 벌여 수십만을 처형하고 수백만을 굴라크에 강제로 감금.

 

 

동시에 낙후된 농업 기반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제국의 경제를 개선하기 위해 5개년 계획을 통해 소련을 중화학공업 위주의 공업 국가로 전환시켰죠.

 

 

1939년 유럽에 전운이 감돌자 나치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어 만일의 전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 했는데요.

 

하지만 독일의 기습적인 침공으로 독소전쟁이 발발하며 연합국에 가입,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

 

대숙청을 비롯한 소련 내부의 혼란 때문에 초기에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2천만 명이 넘는 막대한 인명 손실에도 끝내 승전했고, 전후에는 미국과 대립해 세계를 양분할 초강대국으로의 발판을 마련했죠.

 

그러나 사후에 니키타 흐루쇼프 정권에서 대숙청, 홀로도모르, 굴라크, NKVD를 이용한 공포 정치 등 스탈린 정권의 부정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재조명하면서 소련의 공식적인 흑역사로 격하.

 

반면 그가 정립한 레닌주의 계열 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전 세계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에게 스탈린주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탈린은 매우 괴팍하고 격정적인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그는 품행이 단정한 인간이었는데요.

 

 

정적들이 스탈린의 잔혹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지 못하고 과소평가했기에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고.

 

겉으로 희노애락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제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죠.

 

스탈린은 절대로 메모도구를 가지고 다니는 일도 없었던만큼 기억력이 좋았는데요.

 

 

이때문에 한번 그에게 찍히면 오래도록 그의 뇌리에 남았다가 몇배로 보복 당하곤 했다네요.

 

 

그런 그도 결국엔 치매에 걸렸다죠.

 

검소하고 똑똑하고 판단력과 이해력이 좋았다는 그가 좋은 쪽으로 머리를 썼다면 세계역사도 크게 달라졌겠죠.

 

세계평화를 위해 다시는 이런 인물이 나오지 않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