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심형래 나이 동치미 프로필 부인 이혼 근황 영구 디워 영화 학력 딸 재산

by 통통이0206 2025. 5. 24.

심형래 나이 동치미 프로필 부인 이혼 근황 영구 디워 영화 학력 딸 재산

심형래 나이 동치미 프로필 부인 이혼 근황 영구 디워 영화 학력 딸 재산

 

개그맨 심형래가 동치미에 나와 ‘억’ 소리나는 엄청난 수입에도 이혼 당한 이유를 고백했습니다.

오늘은 심형래 나이 동치미 프로필 부인 이혼 근황 영구 디워 영화 학력 딸 재산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심형래 나이 동치미 프로필 부인 이혼 근황 영구 디워 영화 학력 딸 재산

동치미 심형래 나이 프로필 부인 이혼 근황 영구 디워 영화 학력 딸 재산

오는 24일 방송되는 MBN ‘동치미’에서는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이유’라는 주제로, “돈 벌기 위해 밖으로 나돈다는 남편 VS 좋아서 나가는 것 뿐이라는 아내”의 설전이 펼쳐집니다.

 

 

이날 방송에는 지상파 3사를 대표했던 개그계 대부 3인방 임하룡·이홍렬·심형래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가운데 심형래의 속사정 고백에 시선이 집중.

 

심형래는 이날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이유’에 대해 “돈 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나갔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그러면서 “꼭 돈만 벌려고 나가는 건 아니었지만, 과거 영화 촬영과 사업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집에 잘 못 들어갔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1박 2일 정도였지만, 나는 3~4개월씩 안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깐 이혼을 당하고 밖으로 돌았다”고 고백.

 

그러면서 “사업 투자에도 실패하면서 결국 이혼하게 된 것”이라고 이유를 밝히죠.

 

 

특히 “한 때 큰 돈을 벌었다”는 그는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며 “그 당시 찍었던 CF광고만 100편 이상, 출연한 영화만 118편”이라고 전하죠.

 

이어 “당시 압구정 아파트 한 채가 7천8백만 원이었는데, 한 편 찍을 때마다 8천만 원을 받았다”고 자랑.

 

MC 김용만은 이에 “CF광고 한 편에 압구정 아파트 한 채씩 수입이 있었던 것”이라고 정리하고, 스튜디오에선 “100여 채의 아파트가 지금 다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 공세가 이어지죠.

 

심형래는 이에 “잇따른 사업 실패로 벌었던 많은 돈을 다 날렸다”고 씁쓸하게 털어놓습니다.

 

 

한편, 심형래는 개그맨 겸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다. 1980~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활약한 그는 특히 ‘영구’ 캐릭터로 확실하게 입지전적에 올랐죠.

 

이후 영화 제작자로 전향하여 SF 영화 제작에 투신했으나, 영화 제작과 관련하여서는 수많은 논란들에 휩싸이고 몰락하며 영화에서는 대실패를 맛보며 이미지도 훼손.

 

 

그는 1992년 결혼해 슬하에 딸 하나를 뒀으나, 2011년 말 아내 A씨와 합의 이혼.

 

2018년부터 마당놀이계에 성공적으로 진출, 2021년에 시작한 요식업 사업도 전국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둘 정도로 성공.

 

지난해에는 ‘개그콘서트’에 약 14년 만에 출연하기도 했죠.

 

 

과거 한 예능에서 “가진 걸 다 팔고도 179억 원의 빚이 남았다”며 “스트레스로 구안와사가 왔고, 당뇨도 걸렸다”고 고백해 안타까움을 자아낸 바 있습니다.

 

심형래 나이 동치미 프로필 부인 이혼 근황 영구 디워 영화 학력 딸 재산

심형래 나이는 1958년 2월 21일 (67세)

 

 

고향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

 

 

본관은 청송 심씨 (靑松 沈氏)

 

키는 172cm, 75kg, B형

 

가족은 아버지 심승두(1912년 ~ 1978년), 어머니 이용녀, 형, 누나 4명,여동생 1명 딸 심은지

 

아내와는 이혼했습니다.

 

 

학력은 서울영등포초등학교 (졸업), 영도중학교 (졸업), 여의도고등학교 (졸업)

 

고대 출신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아닙니다.

 

학력 논란이 있었습니다.

 

 

종교는 가톨릭 (세례명: 요셉)

 

1982년 제1회 KBS 개그 콘테스트 동상으로 데뷔.

 

심형래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겸 영화배우,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

 

1980~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특히 영구 캐릭터가 확실하게 입지전적에 오른 인물.

 

이후 영화 제작자로 전향하여 SF 영화 제작에 투신했으나, 영화 제작과 관련하여서는 수많은 논란들에 휩싸이고 몰락하며 영화에서는 대실패를 맛보고 그와 함께 본인의 이미지도 깎이는 수모를 당했죠.

 

 

심형래는 개그계와 영화계의 전설의 바보.

 

 

전자는 바보 연기로 전설이 된 대희극인임을 뜻하고, 후자는 진짜로 레전드급 바보가 되었다는 뜻. 오죽하면 "바보 흉내내서 번 돈, 바보 짓으로 날렸다."라는 말이 있죠.

 

 

심형래는 전성기가 지난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심형래를 알고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역대 최고 코미디언이라는 말에 반박이 불가능할 만큼 많은 인기를 누렸던 사람.

 

영화배우로서 재능도 괜찮아서 많은 영화를 흥행시키기까지 했죠.

 

우뢰매 1편은 당대 전산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이라 제대로 된 추산이 불가능했지만, 제작사에서의 발표만으로도 387만, 어림잡아 셈한 것을 따질 때 1000만은 가볍게 넘고 최대 2000만까지로 추산되기도 하죠.

 

 

우뢰매가 다 흥행한 건 아니지만 9편까지 나오고 영구와 땡칠이 등 수많은 흥행영화까지 포함하면, 80년대 이후 개그맨 가운데 심형래 전성기 시절의 인기를 넘는 개그맨은 없었죠.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습니다.

 

개그맨과 영화 감독으로서 행보가 명암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

 

디워로 다 망하고 라스트 갓파더를 찍었죠.

 

 

라스트 갓파더는 2010년 12월 29일에 공식적으로 개봉.

 

 

일단 초반에는 황해 등의 여러 경쟁작들을 제치고 1위 입성, 이듬해 1월 첫 주까지 열흘 남짓한 기간 172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

 

잠깐 박해일과 김윤진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심장이 뛴다 등에 밀려 3위로 내려가기도 했으나, 주말이 되자마자 다시 1위 재탈환.

 

그러나 이내 좋지 못한 평가들이 줄을 이었고, 결국 손익분기점은 450 - 500만인데 최종 관객수는 254만 1603명으로 끝났습니다.

 

미국에서도 개봉했지만, 혹평과 함께 3주만에 스크린을 내리며 처참하게 망했죠.

 

이는 연기파 배우 하비 케이틀의 흑역사로 남을 듯.

 

 

일설에 의하면 그 동안 그가 출연한 영화들이 모두 성인용이라서 늦게 본 4살짜리 늦둥이 아이에게 보여줄 영화로 어린이용 영화를 찾고 있다가 그만 심형래에게 낚였다고 합니다.

 

2011년 4월 1일에 개봉한 라스트 갓파더는 2011년 4월 21일까지 총 16만 4247달러 밖에 벌어들이지 못하며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라스트 갓파더의 전체 흥행 수익의 1%밖에 되지 않는 수익.

 

미국에서 2억 원도 못 벌었다고...

 

 

데뷔 시절부터 개그맨 동료들이 무시하던 바보 연기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인기를 얻은 직후 <심형래 코믹 캐롤>을 발매하여 대한민국 코미디 앨범 시장의 판도를 뒤바꿔 놓는 등 레전드 개그맨으로서 활동한 것이 독이 되었는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밀어붙이려는 고집과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히 강한 인물.

 

개그를 하던 무렵에는 장인정신이 있어서 항상 코디나 스타일리스트를 쓰지 않고 본인이 얼굴 메이크업을 다 했다고 합니다.

 

바보연기용 무대 의상도 까다롭게 본인이 다 고르다 못해 방송국 소품실에 마음에 드는 옷이 없으면 자신이 동대문이나 종로 등지에서 사 와서 적당히 자르고 찢어서 리폼을 한 적도 있다고.

 

 

같은 코너의 조단역 후배가 분장을 마음에 안 들게 하면 본인이 다 해주면서 가르치기도 했을 만큼 의외로 꼼꼼했다고 하며, 바보연기용 소품테스트도 까다로웠다고 하죠.

 

다 직접 써보고 음향과 비주얼을 고려해서 골랐다고..

 

심형래 앞으로는 영화 하지 말고 본인 잘 하는거 하길 이번 방송 계기로 좀 일어서길 기대해 봅니다.

 

심형래 파이팅!